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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노포 맛집 중림장설렁탕. 1972년부터 지켜온 맛

by wait4me 2026. 4. 16.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맛이 있다

카메라를 들고 도시를 걷다 보면, 나는 자꾸 멈추게 되는 곳들이 있다. 새로 지은 빌딩 사이에 끼어 있는 낡은 간판,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골목 어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듯하지만 분명히 누군가의 하루를 붙들고 있는 가게들. 서울 중림동에 있는 중림장설렁탕도 그런 곳이었다.

처음 발걸음을 옮긴 건 아침 일찍이었다. 9시 오픈이라는 걸 알고 8시 45분에 도착했는데,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이미 가게 안팎을 정성껏 쓸고 계셨다. 9시부터 입장 가능하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몇장 찍었다. 바로 앞이 칠패시장이라는데, 새벽이장이라 그런지 이미 장은 끝나 시장의 느낌은 없었다.

중림장설렁탕, 어떤 곳이야?

중림장설렁탕은 1972년부터 이어온 서울의 노포 설렁탕집이다.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곳. KBS 동네 한 바퀴와 맛있는 녀석들, 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소개됐다는(가게 안에 포스터가 있다.) 곳이니, 단순한 유명 맛집'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집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다. 설렁탕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남대문에서 가장 먼저 성행했고, 남대문식 설렁탕의 시대는 인근 칠패시장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남대문 시장안에도 오래된 유명한 설렁탕집이 하나 있다. 중림장은 바로 그 남대문식 설렁탕의 계보를 잇는 집이다. 칠패시장은 조선시대 성문 밖 최대 난전으로, 한강을 통해 전국의 물자가 유통되던 곳이었고, 먹는 시간조차 아까웠던 바쁜 상인들이 즐겨 찾았던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었단다.

오픈런(?) 아닌 오픈런

8시 58분,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갔다. 그런데 이미 한 분이 자리를 잡고 계셨다. 어떻게 들어오신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뭔가 단골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가게는 옛날 가정집 구조 그대로였다. 주방과 두 개의 방이 분리되어 있고, 마당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에도 테이블이 놓여 있어 나는 그곳에 앉았다. 지붕 없이 뻥 뚫린 마당 자리라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오래된 집의 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리모델링을 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공간이다.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 가게

인상적인 건 공간의 크기에 비해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였다. 좁은 주방 안에 세 분이나 계셨고, 홀에도 세 분이 계셨다. 한 분은 썰어진 파를 그릇과 봉지에 담고 계셨고, 또 한 분은 공기밥을 담고 계셨다. 모두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한결같이 다정다감하셨다.

작은 가게에 일손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이 집을 오래 먹여 살린 단골과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냥 맛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계이자 생활이었던 곳. 그게 느껴지면서 좋아보였다.

국물, 김치, 밥. 셋 다 기억에 남아

설렁탕 한 그릇이 나왔다. 중림장의 설렁탕은 한우 양지와 뼈를 절묘한 비율로 섞어 끓인 것으로, 반투명한 국물에 잡내가 없고 뼈국물의 감칠맛에 고기 육수의 고소함이 더해진다.

일반 설렁탕처럼 하얗게 뽀얀 국물이 아니라, 살짝 말간 곰탕 쪽에 가까운 색감이었다. 그게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한 숟갈 떠먹는 순간, 깔끔하고 진하면서 콤콤하지 않은, 딱 필요한 만큼의 맛이었다.

밥은 토렴으로 나왔다. 뜨거운 국물을 밥에 부었다가 따라내기를 반복해서 밥을 고르게 데우는 방식인데, 이 토렴 방식은 이제 웬만한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래된 식당의 오랜 방식이다.

소금 간은 테이블 위에 놓인 소금으로 직접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게 마음에 들었다. 내 입맛에 맞게, 내가 직접. 파도 마음껏 넣어 먹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음식에 대한 존중처럼 느껴졌다.

김치는 포기김치가 아니라, 자르지 않은 통김치를 가져다주셨다. 내가 직접 잘라 먹어야 하는데 새콤하면서 고추 외에 뭔가 다른 매운 맛, 마치 와사비 같은 상쾌한 매움이 있었다. 설렁탕의 구수함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고기도 넉넉하고, 양도 충분히 많았다. 아주 맛있게 비웠다.

찾아가는 법


👉 아래 지도에서 위치 확인해봐! 충정로역에서 내려 골목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면 나오는데, 대로변에서 바로 보이지 않으니 지도 보고 가는 게 좋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밥을 다 먹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혼자 오신 3분의 손님이 더 들어와서 식사 중이었다.직원분들은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며 가게 안을 이리저리 보고 계셨다. 여유를 가지고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 모양이다. 연륜이 느껴진다. 1972년부터 이 자리에서 수많은 아침을 맞았을 이 가게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골목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오래 돼, 깨진 뚝배기를 쌓아 놓은 듯 하다.

나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근데 중림장은 부디 기록의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현재로 오래 남아줬으면 한다.

또 올 생각이다. 다음에 올 때는 도가니탕도 먹어봐야겠다. 그런데... 내가 먹을 수 있을까?
** 개인적으로 육류, 그 중에서도 탕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식사하고 나오니, 아침인데도 램프를 키셨다.